예전에는 신춘문예와 별도로 학생논문이란 부문이 있었다.
정리·대담=주정완 논설위원.1971년 1월 조선일보의 ‘학생논문 공모전에서 내가 쓴 글이 가작으로 뽑혔다.
그런데도 중앙정보부(현 국가정보원)에 불려간 적이 있다.아버지는 자주 근무지를 옮겨 다녔다.스스로 생각해봐도 그림으로 성공할 것이란 확신이 없었다.
지금 같으면 작가도 생활인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말이었다.미대 진학에 대해 부모의 반대가 워낙 심했다.
변변한 가방도 없이 보따리를 이고 진 사람들이 열차에 올라탔다.
상금은 그때 돈으로 30만원인가.이정재 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.
그러다가 국민학교 6학년부터는 부산에서 학교를 나왔다.초기에 나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조문객을 받는 상주 역할을 했다.
그 자리에 있던 문인들에겐 기가 막힌 얘기였을 것이다.어쨌든 나는 정보부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반공 교육을 받아야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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